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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광양-매화마을

by rich-mam 2023. 2. 2.

매화마을의 매실이 식탁 위에 올라오기까지 외로움 속에서 일구어낸 45만 평의 매화 동산

23살의 밀양 아씨 홍쌍리가 전남 광양 산골 마을로 시집온 것은 1965년이었다. 집 앞에 섬진강이 유유히 흘러가는 아름다운 마을이었지만 먹고살기가 막막했던 시절, 
이 산골 마을에는 말동무조차 없었다. 감수성이 풍부했던 홍쌍리 새댁은 남달리 외로움을 많이 탔다. 결혼한 지 한 해가 지나고 하루는 집 뒷산에 올랐다. 
이 날따라 하얀 백합이 유난히 가슴속 깊이 사무쳤다. 그 꽃잎 속에 눈물이 방울방울 맺혀 있는 듯했다. 꽃잎을 툭 쳤다. 눈물이 또르르 쏟아졌다. 
홍쌍리 새댁의 입에서 갑자기 시가 흘러나왔다.
“외로운 산비탈에 홀로 핀 백합화야, 네 신세나 내 신세나 왜 이리 똑같나. 그렇지만 너는 네 향으로 산천을 다 보듬지만 나는 사람이 그리워서 못 살겠다.”라고 읊조리며 앞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앞에는 지리산이요, 등 뒤에는 백운산이 받치고 섰고, 가운데 흐르는 섬진강의 물안개는 솜이불을 덮어놓은 양 아름다웠다. 문득 홍쌍리 새댁은 ‘내가 오늘 살다 내일 도망갈지라도 
이곳에 천국을 한번 만들어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불타올랐다.

눈꽃처럼 핀 백매화
 그 하얀 꽃에 반한 홍쌍리 새댁은 시아버지가 심어둔 매화나무를 늘려나가기로 했다. 하얀 매화가 만발할 아름다운 동산을 꿈꾸면서 그 넓은 밤나무 동산에 매화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돈도 안 되는 매화나무가 밤나무의 자리를 차곡차곡 채워나갔다. 밤을 1 가마 팔면 쌀 2~3 가마를 살 수 있었던 시절에 이 젊은 새댁은 너무나도 엉뚱한 일을 시작한 것이다. 
매실이 열려도 동네 사람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지만 새댁은 가파른 산 위까지 기어 올라가 매화나무를 빼곡히 심었다. 45만 평 동산의 잡초를 다 뽑고 매화를 심는 동안 5년이 훌쩍 지났다.


홍쌍리는 외로웠지만 이렇게 꿈은 영글어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시아버지와 시숙부가 남양(경기도 화성)에서 광산업으로 망한 후로 하루가 멀다고 빚쟁이들이 달려들어 엉키고 찢기고
하는 일이 일상사가 되어버렸다. 옷이 찢기고 머리카락은 뽑히고 몸에 멍들지 않은 날이 없었다. 45만 평의 땅도 날렸다. 견디다 못해 머리를 짧게 자르고 미제 스모 바지에 야전잠바를 입으며 11년간
버티며 살았다. 다시 땅을 조금씩 찾아왔지만 단아하고 곱던 여인은 하루아침에 남정네 차림이 되었다. 빚더미로 힘든 시절을 보내던 어느 봄날, 하얀 매화가 눈꽃같이 피던 날 스님 한 분이 찾아왔다.
스님은 매화 동산을 거닐었다. 그 후에도 꽃이 피면 찾아왔다. 홍쌍리 여사는 '웬 중이 자꾸 오나 생각했다. 스님은 매화 동산을 둘러보면서 뭐라고 한 마디씩 툭툭 내뱉고 갔다. 그러기를 몇 차례,
스님이 찾아오면 홍쌍리 여사는 자신도 모르게 스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동산을 거닐게 되었다. 스님은 "여긴 이렇게, 저긴 저렇게 나무를 심어라, " "집은 이렇게, 길은 저렇게 내라, " 등의 조언을 했다.
홍쌍리 여사는 최면에 걸린 듯 스님이 하나는 대로 따라 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 스님은 바로 법정 스님이었다. 송광사 불일암에서 수행하던 시절 이곳을 자주 찾은 것이다. 이후 스님은 홍쌍리 여사를 딸처럼 대하고 매화 동산 가꾸는 일에 '훈수'했다.
어느 날 법정 스님은 “좌청룡 우백호에 코가 있고 입이 있는데 턱이 없다.”라고 했다. 그 말이 도통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던 홍쌍리 여사는 나중에야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꺼진 땅을 두고 한 말이었다. 법정 스님은 이어 “김대중 대통령의 헬기가 앉을자리를 만들 수 있는가?”라고 해서 그 땅을 다 메우고 나니, “이제 턱이 있어 됐다.”라고 하면서 “빚 많이 졌지? 
이제 이 땅 팔고 나가지만 않으면 밥은 먹고 산다.” 하며 홍쌍리 여사를 이 땅에 붙들어 맸다. 이후에도 법정 스님은 강원도와 서울에 머물면서도 홍쌍리 여사가 도움을 요청하면 한걸음에 달려와 홍쌍리 여사의 일을 도왔다.
 
지금은 전 국민의 관광지가 된 '매화마을'은 이렇게 탄생했다. 그중에서도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건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14호 홍쌍리 여사가 운영하는 '청매실농원'이다. 홍쌍리 여사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던 매실을 우리 식탁에 올린 장본인이자 전남 광양시 다압면 매화마을의 대명사다. 호남의 명산인 백운산 자락에 터를 잡고 섬진강 물줄기를 빨아들여 향기로운 매화꽃을 피운 뒤 봄바람에 날려 보냈다.
이웃들도 이젠 홍쌍리 여사를 따라 매화농장을 가꾸기 시작했다. 섬진마을 거리마다 길게 줄지은 매화꽃은 이제 섬진강을 따라 10km 넘게 수놓고 있다. 광양이 매화의 본향이 된 것이다.

지역경제 살리는 기특한 매화
 
넓은 마당에는 매실을 담가둔 옹기 2천여 개가 줄지어 있다. 이른 시각인데도 관광객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었다. 
내가 찾은 날에는 백매화가 산비탈 아래쪽에서는 절반 이상 핀 상태이고, 높은 고도에서는 아직 피지 않은 상태였다. 같은 땅이지만 약간의 고도차에도 꽃망울은 섬세한 차이를 드러냈다. 
반면에 홍매화는 활짝 피어 마을을 온통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홍매화 사이로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이 멋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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