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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남해 독일마을

by rich-mam 2023. 2. 3.

한국에서 독일 중세마을의 풍경을 만끽하다

독일마을은 대한민국 경상남도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에 있는 마을이다. 
1960년대 독일(당시 서독)에 간호사와 광부로 파견되었던 독일 거주 교포들이 대한민국에 재정 착할 수 있도록 남해군에서 개발한 곳이다.
이후 독일의 이국 문화를 경험하는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2001년 남해군에서 30여 억 원을 들여 30,000여 평의 부지를 마련해 40여 동의 건축물을 분양하였으며, 독일 교포들은 독일에서 재료를 수입하여 독일식 전통 주택을 신축했다. 
오늘날 독일마을은 독일의 문화와 대한민국 전통문화 예술촌을 연계한 휴양지 및 관광지의 역할을 하고 있다.

머나먼 이국 독일 땅에서 한국인 간호사들은 월급날이 되면 눈물로 번 돈을 들고 일제히 은행으로 몰려갔다.
바로 한국의 부모와 가족에게 송금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미혼이었고 어떤 이는 어린 자녀들을 키
우다 독일로 떠났다. 독일로 간 간호사들은 번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오로지 일만 하며 송금했다. 함께 파견된
광부들도 똑같이 했다. 당시 간호사 월급은 평균 8천 마르크였다고 한다. 한화로는 16만 원 정도였다. 한국의 초급
공무원 월급이 3천3백 원 하던 시절이었으니 큰돈이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1960~1970대에 가족과 헤어져 돈을 벌어야 했던 수많은 파독 간호사와 광부 들은 1만 8천
명에 달했다. 그들의 눈물겨운 송금액은 당시 우리나라 GDP의 2% 규모에 달했다고 하니, 그들의 노고를 빼놓고는
근대화나 경제대국을 논 할 수 없을 정도다.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독일은 미국의 압력으로 파독 근로자들의 급여를
담보 삼아 한국의 경제발전에 필요한 차관을 제공했고, 그 돈은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들의 눈물 어린 노력을
생각하면 숙연해진다.
지하 1,000m 막장의 위험 속에서 광부들은 목숨을 담보로 돈을 벌었고, 독일은 그 돈을 담보로 차관을 제공했으니
가슴이 뭉클해질 수밖에 없다. 한국의 간호사와 광부들은 근면성실해서 현지의 평판이 아주 좋아 계약을 연장하는 일도
많았다. 이들은 오늘날 유럽 한인사회의 중심이 되었다.
눈물로 떠났던 간호사와 광부들이 백발이 될 즈음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오랜 세월 떠나 살았던 한국 사회에
대한 적응이 두려워 그들끼리 한 울타리에 모였다. 그곳이 바로 경남 남해 바닷가에 위치한 풍경 좋은 '독일마을'이다.
고국으로 돌아오고 싶어도 선뜻 오지 못한 이들을 위해 남해군이 보금자리를 만들어준 것이다. 당시 남해군이 의욕적으로
추진해 1999년 독일 마인츠 등지를 돌며 설명회를 열었다. 노년기를 맞은 그들의 반응은 무척 좋았다. 돌아오고 싶었지만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아 망설였는데, 그 결심을 남해군이 내리게끔 도운 것이다. 대신에 그들이 한평생
살아온 독일에 대한 향수도 누릴 수 있도록 30여 채의 모든 주택을 붉은 지붕에 하얀 벽의 독일풍으로 따라 지었다. 
독일인 배우자가 있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건축자재도 교포들이 직접 독일의 재료를 수입해 전통 독일식 주택으로
지어 그 가치를 돋보이게 했다.


관광명소가 된 이국적인 독일마을
그들의 애환과는 달리 아름답고 이국적인 독일마을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기심과 관심을 끌었고 일약 전국구 관광명소가 되었다. 독일마을은 '보물의 섬'으로 불리는 남해군에서도 제일 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야트막한 산비탈에 30채의 독일식 건물이 있는데 아름다운 남해군의 앞바다 '남해'를 조망하는 경치가 일품이다. 국내에서 보기 힘든 이국적인 풍경인 만큼 이 집 저 집 서로 다른 주택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마치 독일의 어느 시골 마을에 온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아기자기하면서도 예쁘기 그지없다.
나는 늦여름의 소나기가 오던 날과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월의 봄바람이 불던 날, 이렇게 두 차례 독일마을을 여행했다. 첫 번째 여행 때는 드라마(환상의 커플)의 무대인 '철수네 집'을 빗속에서 우산을 쓰고 지켜봤던 것이 인상 깊었다. 비를 피해 어느 집  출입구 현관에 잠시 서 있으니 옆집 독일인 할아버지가 눈을 마주치며 독일 특유의 무뚝뚝한 목소리로 "모르겐(안녕)"하고 인사를 건넸다. 나는 갑작스럽게 받은 인사라 얼떨결에 목례와 함께 "모르겐"으로 답했다.

독일풍의 마을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경치를 만끽해 보는 것도 좋겠다. 마을에는 관광객을 위한 펜션도 있다. 민박집의 이름도 독일식이어서 흥미롭다. 알프스하우스, 하이디, 구텐베르크, 로젠하우스, 베토벤하우스, 괴테하우스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지명을 이용한 이름이다. 마치 독일에 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마을 중앙에 있는 맥줏집에서 마을과 바다를 조망하며 힐링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
독일마을은 매년 10월이면 독일의 맥주 축제인 '옥토버페스트'를 개최한다. 1810년부터 뮌헨 서부의 테레지엔 비제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에서 5백만 명이나 몰린다고 하니 가히 명품 축제임이 틀림없다. 독일마을 주민들의 라틴댄스와 다양한 공연 행사는 물론 독일 맥주와 와인 시음과, 독일 소시지 등 먹을거리를 제공해 독일 현지 축제를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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